박영선에게 윤석열은 단두대 순애보 주인공인가?

ai주식/주식ai : 한국 도자기와 찰스 디킨스

주식 : 전날 윤석열 정부 차기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됐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일본 오사카(大阪)에 머물고 있다는 박 전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오사카 시립 동양 도자 미술관이 지난 4월 12일부터 2년 만에 재공개 한 이병창 콜렉션(301점의 고려, 조선 도자기) 특별전에 초대되어 왔다"며, 재일교포 이병창 박사가 수집한 한국 도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이병창 박사가 수집한 한국 도자기는 일제시대 일본으로 넘어간 일본 내에 있던 한국 도자기들"이라며 "이 도자기들이 일본에 기증된 것에 대해 딸 이성희 여사는 '아버지(이병창 박사)가 고국에 기증하려 했지만 당시 고국에서는 국보급만 줬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일본에 있는 한국 도자기라면 가치와 상관없이 모두 모은아버지로서는 실망스러운 이야기였지만 아버지는 그래도 국보급 도자기 몇 점을 한국에 기증했고 나중에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보여주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실망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연고가 있던 오사카에 기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슴 절절한 마음으로 한국 도자기를 대하면서 아직도 우리사회는 우리것에 대한 소중함을 놓치고 인본주의를 망각한 채 사람에 대해, 상대방에 대해 헐뜯는 일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박 전 장관은 자신의 하마평을 의식한 듯, 같은 글에서 "제가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정말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수 많은 분이 전화를 주시고 문자를 남기셨다. 깊은 관심에 감사드린다"면서 "지금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중요한 시기여서 협치가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두 도시 이야기처럼 보여지고 있다고 생각된다"라고 적었다.

그는 글 말미에 영국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 서문을 인용해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고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고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고 우리앞에 모든 것이 있었지만 우리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을 향해 가고자 했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반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시절은 지금과 너무 흡사하게, 일부 목청 높은 권위자들은 그 시대를 논할 때 좋은 쪽으로든 나쁜쪽으로든 양극단의 형태로만 그 시대를 평가하려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우리사회는 우리것에 대한 소중함을 놓치고 인본주의를 망각한 채 사람에 대해, 상대방에 대해 헐뜯는 일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지금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중요한 시기여서 협치가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실이 전날 박 전 장관의 총리 기용설을 부인한 것과 별개로, 박 전 장관의 SNS 글은 그의 '총리 의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전날 함께 하마평에 오른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주변을 통해 "뭘 더 할 생각이 없다"며 선을 그은 것과 달리, 박 전 장관은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현역 국회의원 시절 언론오보 대응에 철저했던 모습과 비교하면 어딘가 다른 모습이었다. 박 전 장관이올린 '한국 도자기'와 '두 도시 이야기'에 대한 글 내용 역시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그의 총리 의지와도 맞닿아있는 듯하다.

특히 이병창 박사가 수집한 한국 도자기를 일본 오사카에 기증한 이야기는, 대선 이후 민주당 내에서 특별한 역할을 찾지 못하는 박 전 장관의 입장을 대입해보면, 고국인 한국(민주당)에 도자기(자신의 능력)를 기증하려 했지만 한국은 국보급만 줬으면 좋겠다고 했고, 일본에 있는 한국 도자기(보수 진영에 있는 민주당 지향 인물)라면 다 수집했던 ― 즉, 누구든 만나려고 했던 ― 자신으로선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기에 연고가 있던 오사카(보수 내 특정 정파)에 도자기(능력)를 기증한다는 비유처럼 읽힌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비유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의 서문에 나온 '최고의 시절'은 영국 런던이고 '최악의 시절'은 혁명기의 프랑스 파리를 가리킨다. 박 전 장관은 양비론을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어느 쪽이 '최고의 시절'이고 '최악의 시절'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대파 혁명'으로 불릴 만큼 야당이 압승을 거둔 현재 한국의 상황이 1년 3개월 미국에 체류한 박 전 장관에겐 프랑스 혁명의 '광풍'이 불던 '최악의 시절'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대의와 광풍

박 전 장관이 개인의 정치적 계산에 총리 욕심을 낼 순 있겠지만, 총선이 끝난 한국 사회를 단순히 협치가 없는 극단의 사회로만 바라보는 관점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총선 패배 뒤에도 영수회담은커녕 '협치'라는 단어조차 꺼내지 않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크다는 점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박 전 장관의 오랜 지인인 민주당 박지원 당선인은 전날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총리 하마평에 대해 "아직도 정신 못차린 (대통령의) 야당파괴 공작"이라고 논평했다. 아울러 박 당선인은"이번 총선에 민주당에서 탈당하고 변신한 자들을 국민이 다 낙선시키고 심판했다. 그런데 민주당 인사들이 간다고 인준이 되겠나"라며 형식적인 협치, 균형자체를경계했다. 그의 말처럼 이낙연, 설훈, 홍영표, 이원욱, 박영순, 이상민, 김영주 등 민주당을 탈당해 출마한 정치인들은 모두 이번 총선에서 국민에게 외면 당했다. 앞으로도 돌아오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최소한의 형식도, 논의도 없이 '여론 떠보기'식으로 이뤄진 하마평은 이미 명분도 대의도 상실했다. 여권 인사조차 박 전 장관 하마평에 대해 "당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인사(권성동)"라고 반발하고 있다. 마치 탄핵 직전 박근혜 정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는 평가도 있다. 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선거 뒤 11%포인트 떨어져 20%대로 추락했다. 어디가 끝인지도 아직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민주당 추미애 당선인이 전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박근혜 정부 탄핵 직전에 탄핵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실장을 지내셨던 김병준 씨를 총리로 지명했는데 그것과 유사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국회 동의도 얻어내지 못하고 실패했다. 개인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그분이 체면을 많이 구겼다"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럼에도 다른 인사들과 달리 홀로 총리직에 연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박 전 장관이 윤 대통령과의 사적 인연에 기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만 더 키운다. 이미 여론은 그와 윤 대통령의 과거 인연에 집중되고 있다.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박 장관은 윤 대통령이 꽤 고마워하는 게 있다"며 "지금의 이 자리에 (대통령을) 있게 만든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자리를 마련해 준 게 (당시) 박영선 법사위원장이었다"고 말했다. 유 전 총장의 설명에 따르면 그 인연으로 윤 대통령 부부가 '불러줘서 고맙다'며 박 전 장관과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한다. 박 전 장관의 남편 이원조 미국 변호사도 윤 대통령 부부와 동반해서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은 윤 대통령뿐 아니라 이 정부의 실권자처럼 보이는 부인 김건희 씨와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장관은 지난 대선 당시 라디오에서 "제가 (MBC) 문화부 기자를 했다"며 "(김건희 씨가) 기획전시를 하시던 분이었기에 윤석열 후보와 결혼하기 전부터 알았다"고 말했다. 또 박 전 장관은 지난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 대통령의 강연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거 인연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이 그동안 공적인 영역에 사적 인연을 끌어들여왔던 것처럼박 전 장관도 하마평에 올린 것으로 이해된다.박지원 당선인은 이날 오후 <시사인>과 한 인터뷰에서 "(총리 하마평) 이전에도 용산에서 박영선 장관에게 어떤 제안을 한 게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대의와 개인의 욕망을 구분하지 못하면 박지원 당선인말처럼 야당 파괴라는 전망만 그려진다. 무엇보다 친문 핵심으로 불리며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위원까지 지냈던 박 전 장관이 투표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윤석열 정부에 '협치'라는 명분으로 들어간다면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쓴문재인 대통령조차 "정말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도하다"고 비판한 정부다. 지난 2년간 야당 대표와 단 한 차례도 만나지 않고 9번의 거부권을 행사하고 총선 패배에도 반성없는 대통령 아래에서 무슨 협치를 실현할 수 있을지는 더더욱 의문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윤석열 정부 2년 내내 존재감이 없었던 점만 봐도 제대로 된 총리의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 여권 인사들조차 레임덕(권력누수) 혹은 데드덕(권력공백) 상태의 윤석열 정부와 선을 긋고 있다.

박 전 장관이 이날 자신의 글에 길게 인용한 디킨스의 소설<두 도시 이야기>는 런던의 변호사시드니가 사랑하는 여성 루시를 위해 스스로 단두대에 서는 보를 '프랑스 혁명의 광풍'이라는 배경 속에서 그려내며 막을 내린다. 박 전 장관의 눈엔윤 대통령이 순정을 위해 단두대에 선 시드니처럼 보일지도모르겠다. 다만 시드니를 단두대에 올린 시민들의 모습에서 이 혁명을 단순히 광풍이라고만 규정하고혁명의 대의는 읽지 못한다면, 정치인 박영선에게 시민들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 물을필요가 있어 보인다.

박 전 장관이 이날 올린 메시지가 대통령실이나 야당과 어느 정도 협의가 된 내용인지, 개인이 단순히 여론을 살피기 위해 올린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의 페이스북 글엔 오전부터 많은 시민들의 비판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민심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