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수용소 인간…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사례

재원 : 영화 좋아하시나요? 배우 이선균이 나왔던 <끝까지 간다>와 이은주가 나왔던 <번지점프를 하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두 영화 모두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곡을 영화음악으로 사용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몰라도, 그의 ‘재즈모음곡 2번 중 왈츠 2’를 들으시면 대부분은 ‘아!’하실 거구요.

investing : 소련의 굴라크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는 1906년 러시아(소련)에서 태어나 1975년에 사망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자주 연주하는 그의 교향곡 5번 ‘혁명’은 당시 소련을 지배하고 있던 독재자 스탈린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고 합니다. 스탈린은 어떤 사람이고, 소련은 어떤 국가였을까요.

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그저 단순히, 그들의 운명에 대한 아무 공식적 언급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자주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 친지들은 비밀경찰에 수소문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물정에 어둡지는 않았다. 이렇게 체포된 사람들의 그 뒤 운명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흔했다. 사망 날짜도 대개 그 무렵이었다. – 솔로몬 볼코프, <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그 주역이었던 레닌이 1924년 사망합니다. 이후 스탈린은 경쟁자들을 제거하면서 최고 권력자 지위에 올랐고, 이때부터 소련은 그야말로 공포 시대에 접어듭니다. 스탈린이나 공산당에 반항할 기미가 조금만 보여도 바로 총살입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소련은 초기 대응에 실패합니다. 초기 대응 실패의 이유로 꼽히는 것 하나가, 스탈린과 공산당이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서 전쟁을 제대로 치를만한 군인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처형을 기다린다는 것은 일생 동안 나를 괴롭힌 주제였다. – 솔로몬 볼코프, 같은 책

국제적으로 유명하고, 소련 안에서도 꽤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던 쇼스타코비치 같은 사람도 언제 처형될지 몰라 불안에 떨었다고 합니다. 반대하는 세력을 모두 제거해서, 더이상 자신에게 대항할만한 인물이나 세력이 보이지 않는데도 스탈린의 총살은 병적으로 계속됩니다. 특별한 혐의가 있거나 없거나 상관 없습니다.

설사 총살을 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죽지 않은 일명 ‘반역자’를 기다리는 것은 굴라크(Gulag. 집단노동수용소 관리본부를 뜻하는 러시아어의 줄임말)라 불리는 강제수용소입니다.

그는 늘 강제노동수용소를 공산당 지배의 중심 요소로 생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강제노동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는 스탈린이 두려워하거나 괘씸하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반소 분자’의 범주에 드는 주요 인물과 집단은 전시 재판을 받았다. 그들을 따르거나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자기들도 체포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예 소련에 반대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할 속셈이었다. – 로버트 서비스, <스탈린, 강철 권력>

스탈린이 ‘넌, 반역자야’라고 하면 반역자가 되고, 비밀경찰이 ‘넌, 간첩이야’ 하면 간첩이 되는 겁니다. 희생된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슨 말과 행동을 했느냐 따위는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배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느냐일뿐입니다. 그것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하는 살인 충동 때문이든,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때문이든 말입니다.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

왼쪽 지도에서 보듯 팔레스타인은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지도 가운데 살구색 부분으로 ‘1948년 지역’입니다. 유대인들이 1948년 전쟁에서 차지한 곳으로 전체 팔레스타인의 78%를 차지합니다. 일명 이스라엘이라고 불립니다.

둘째는 지도의 짙은 회색 부분으로 1967년 점령지입니다. 이스라엘이 1967년 전쟁에서 차지한 곳으로 전체 팔레스타인의 22%를 차지합니다. 오른쪽 짙은 회색 부분은 요르단과 접해 있는 서안 지구(West Bank), 왼쪽 짙은 회색 부분은 이집트·지중해가 맞닿은 가자 지구(Gaza Strip)입니다.

1967년 가자 지구를 이스라엘이 점령한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의 해방운동이 계속 되었고, 1987년에는 인티파다(봉기)가 벌어집니다. 수십년째 저항과 탄압, 탄압과 저항이 계속되는 곳이 가자입니다. 그 가운데 이스라엘과 가자 사이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흐마드 야신(Ahmad Yasin) 암살 사건입니다.

야신은 1936년 팔레스타인에 있는 알 주라(Al-Jura)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1948년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이 마을을 공격했고, 야신과 가족들은 가자 지역으로 피난을 떠납니다. 12살 때 있었던 사고 때문에 장애를 갖게 된 야신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아랍어를 가르치는 교사이자 이슬람 성직자로 활동 합니다.

1983년에는 야신이 비밀조직을 결성했다는 혐의로 이스라엘에 체포되어 13년형을 선고 받아 수감되었지만, 2년 뒤 풀려납니다. 1987년에는 하마스(Hamas)를 창립하였고, 1989년에는 이스라엘군을 살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40년형을 받습니다. 1997년 감옥에서 풀려난 뒤에도 야신은 팔레스타인인들의 해방과 이스라엘의 점령 중단을 계속 요구했습니다. 이런 야신을 이스라엘이 가만둘 리 없겠지요.

성직자 셰이크 야신이 2004년 3월 모스크를 나설 때 야신만이 아니라 근처에 있던 7명의 민간인까지 이스라엘군이 살해했는데이스라엘군은 헬리콥터에서 발사한 레이저 유도식 헬파이어 미사일을 사용한 것으로 의심받았습니다. 하마스의 영적인 지도자로 존경받았고, 하마스에서 가장 유화적인 인물로도 여겨졌던 야신이 암살당하자, 이라크에서는 대대적인 시위가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 노엄 촘스키·질베르 아슈카르, <촘스키와 아슈카르, 중동을 이야기하다>

이스라엘군에게 쫓겨난 전쟁 난민이자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 참여해온 한 인물이 그렇게 암살당한 것입니다. 야신이 사망하자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중동 전역에서 분노의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야신이 암살된 2년 뒤 2006년,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에서 선거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마스가 승리를 하자 이스라엘과 미국이 하마스 파괴 작전에 나섭니다. 선거에 부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그들과 협력하는 팔레스타인 일부 조직에게 돈과 무기를 제공하며 하마스에 맞서 싸우도록 부추겼습니다. 팔레스타인 내전의 결과 서안 지구는 파타(Fatah)를 중심으로 하는 자치정부(PA)가, 가자 지구는 하마스가 운영하게 됩니다.

가자 수용소

1990년대 중반에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거대한 장벽과 전기 담장, 감시탑으로 둘러쌌고, 그 결과 가자 지구는 완전히 봉쇄된 채 거대한 포로수용소로 바뀌었다. – 일란 파페, <팔레스타인 현대사>

하마스 파괴 작전이 실패하자 2007년부터 이스라엘은 가자에 대한 전면 봉쇄에 들어갑니다. 그 이전에는 자유로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용소와 다름 없는 가자에 대한 봉쇄가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야말로 하늘·바다·땅이 모두 막혀 있습니다.

먼저 하늘. 1998년 가자 남쪽에 ‘야세르 아라파트 국제 공항(Yasser Arafat International Airport)’이 문을 엽니다. 공항이 있다는 것은 고립되어 있는 가자가 다른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2001년 이스라엘이 관제탑과 활주로 등을 폭파함으로써 더이상 운항을 할 수 없는, 쓰라린 옛 추억만 간직한 공항이 되어버렸습니다.

두 번째 바다. 가자는 지중해 쪽으로 약 40km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어민들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시장에 내다팝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바다에 작은 어업 제한 구역을 설정해놓은 것은 물론이고, 수시로 해군이 어민을 향해 총을 쏩니다. 넓은 바다마저 외부로 나갈 수 없도록 막혀 있는 겁니다.

세 번째 땅. 이스라엘은 콘크리트와 철조망 등으로 가자 지구를 둘러싸는 60km가량의 장벽을 설치했습니다. 장벽을 따라 감시 초소와 군인을 배치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장벽 가까이만 가도 총을 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검문소를 통해서만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2006년, 그러니까 봉쇄가 강화되기 직전에 제가 가자 지구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외국인인 제가 단순 방문하는데도 이스라엘의 까다로운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때도 가자 사람들은 저에게 예루살렘이나 서안 지구가 어떤 곳인지 물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사람임에도 자신들은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서안 지구 사람들은 저에게 가자 지구가 어떤 곳인지 물어보는 실정이었습니다.

2007년 봉쇄가 강화된 이후 가자 사람들이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육로는 2가지가 있습니다. 가자 북쪽에 있는 베이트 하눈(Beit Hanoun. 이스라엘 식으로는 에레즈Erez) 쪽 검문소를 지나 ‘1948년 지역(이스라엘)’으로 가거나, 가자 남쪽에 있는 라파(Rafah) 국경을 지나 이집트로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관리하는 검문소를 통과하려면 특별 허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심각한 질병 치료 등의 목적이 아니고서는 허가를 얻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이렇게 되니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 사이의 연결은 끊어져 무슬림이나 기독교인 모두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 등지로 갈 수 없습니다. 서안에 있는 가족이나 친척을 만날 수도 없고, 또다른 직업을 찾거나 교육을 받기 위한 기회마저 빼앗겼습니다.

가자가 봉쇄 되어 있다는 것은 사람이 외부로 나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식량, 석유, 의약품 등의 반입 또한 이스라엘이 언제든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23~2024 가자 공격 과정에서도 이스라엘은 식량 및 의약품의 반입을 가로막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수용소 인간

저는 꿈도 많고 스스로 잠재력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자 지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상상 속에서만 꿈을 꿉니다…제 유일한 소원은 석사 학위를 가지 지구 밖에서 받는 거예요. 제 꿈은 경영학 석사 학위를 얻는 것이고,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여성이 되는 것입니다…저는 가자 지구 밖에 살며 방해물이나 경계선 없이 세계를 여행하고 싶거든요. – 아디,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가자에 사는 한 24세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직접 쓴 글입니다. 실명을 밝힐 수가 없어 이름을 A.J.라고만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이라고 해서 하루하루 생존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기회를 얻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런 꿈조차 전쟁이 없을 때에나 가질 수 있는 꿈입니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한창인 지금, A.J.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가자의 아이들은 부모가 팔레스타인인이어서 자신도 팔레스타인인이 된 겁니다. 이 아이들 대부분은 한번도 가자 지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소련의 굴라크가 외부에서 수감자들을 끌고 왔다면, 가자 지구는 230만 명이 살고 있는 그 지역 자체를 수용소로 만든 것입니다. 아무 죄 없는 아이들마저 태어날 때부터 감옥에 갇힌 죄수의 신세입니다.

수용소에서 가장 나쁜 상황에 처한 집단이 바로 이 세 번째 집단으로, 이들은 완전히 무고한 사람들이었다…수용소의 궁극적 목적, 즉 소련에서는 일부 달성되었고 나치 테러의 마지막 시기에 명백하게 드러났던 궁극적 목적은 전체 수용소 주민을 이 범주의 무고한 사람들로 채우는 것이다. –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2023년 10월,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북부에 있는 가자 시티(Gaza City)를 폭격하면서 주민들에게 살고 싶으면 남쪽에 있는 도시 칸 유니스(Khan Younis) 등으로 떠나라 했습니다. 그 다음엔 칸 유니스를 공격할테니 살고 싶으면 더 남쪽에 있는 라파로 떠나라 했습니다.

라파 그 다음은 없습니다. 라파 너머는 이집트이고, 가자와 이집트 사이에 장벽이 있어 아무도 나갈 수 없습니다.

2024년 3월 10일 현재 사망자 수가 벌써 3만 1천명을 넘고 있고, 지난 하루만에도 80명 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폭격에 희생되었습니다. 장벽 속에 갇힌, 도망갈 곳도 없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몰고다니며 폭탄을 쏟아부어 끊임없이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이 철조망에 갇힌 채 독가스를 마시며 죽어갔듯이.